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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구니

6.25 전쟁에 참여한 유엔군 현황

중국이 북침이라는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 이렇게 많은 유엔군이 참여 했을까 스스로 물어보면 답이 나올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준 고마운 나라들 잊지 말고 도와야 할 것 같아 정리해 둡니다. 

믿거나 말거나 일본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인 것 같네요! 

(1) 인천상륙작전시 정찰 (1950. 9. 15.) 

맥아더 장군의 승리를 이끌어줬다는 인천상륙작전. 하지만 일본 없이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일본의 참여는 깊숙했다. 상륙작전 한달전에 투입된 일본의 정보요원들은 인천현지를 정찰하고, 인천항에서 수위가 가장 높아 상륙작전하기 좋은 시점을 산출해 보고 했다. 또한, 상륙작전 전 일본군 정보장교 200여명이 한반도 식민지배시절 경험을 토대로 상세한 한반도 지리정보를 미군에게 제공하였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인천상륙작전이 계획되었다. 

간만의 차가 커서 상륙작전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을 가졌다는 인천의 문제점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일본에서 급조된 '알류미늄 사다리'이다. '일본알류미늄공업'는 당시 GHQ의 명령으로 60개의 사다리를 만들어 미군에 공급하였다. 

(2) 원산상륙작전시 소해작전 (1950. 10. 5.)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은 둘로 쪼개 제10군단으로 원산상륙작전을 준비한다. 그런데, 원산앞바다에는 이미 소련제 기뢰 3천여발이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 해상보안청 장관에게 소해정 및 소해작전 요원을 요청하였고, 일본군은 그렇게 파병되어와서 2주간 소해작전을 실시하였다. 
  
일본 소해함은 시모노세키 항을 출발해, 미군과 함께 기뢰를 제거했고, 작전도중 일본소해정 MS14호가 기뢰와 접촉해 1명이 실종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원산 뿐만 아니라, 진남포, 해주, 군산앞바다에서 1,200여명의 소해대원과 54척의 소해정이 투입되었다. 
  
당시에는 이를 기밀로 처리했지만, 이후 평문화되어서, 최근에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세미나등도 진행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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