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케퍽에서 보고 퍼 왔습니다. 원글에 있던 실명은 모두 OOO이나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골수 기증 날짜도 지웠습니다.
[ 골수기증 후기 ]
[조혈모세포 촉진제 주사 첫날]
전
날 비가 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온 것이 아니기에 비행기가 결항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출발시각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해
보니 안개가 조금 보였지만 그때까지도 이 정도로 이륙하지 않을까 하고 있었다.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자 공항입구의 경비
아저씨께서 다가오시더니 아침 비행기가 결항이라고 알려 주셨다. 비행기의 이륙 가능 여부를 미처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동생을
보냈더라면 오전 일정이 완전히 틀어져 버릴 상황이었다. 버스를 이용해 대구 동부 정류장으로 가서 동대구역까지 택시를 이용하고서
KTX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내로 나오면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동생이 경주에 가야 하니 바로 경주역으로 가서
동대구역에서 갈아타는 서울 기차를 타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경주로 가는 길에 1588-7788 에 전화를 걸어 열차 시간을 확인해 보니 동대구까지 운행하는 통근열차가 KTX와 연계되어
탑승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조금 속도를 높여 경주로 향하면서 바라본 들녘엔 뽀얀 안개가 자욱하였다. 간신히 경주역에
도착하여 매표소로 달려가니 다행히 아직 열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표를 구매하고 다시 달려 열차에 올랐고 잠시 후 열차는
동대구로 출발하였다. 통근 열차는 몇몇 작은 역에 정차하면서 동대구로 향했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바라본 창밖은 평온한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양역을 떠난 기차는 잠시 후 동대구로 향했고 KTX로 환승을 하려고 하차하여 9번 승강장으로 이동하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매점에서 보리전병과 주스를 사서 먹으며 열차를 기다렸다. 10시 3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고 몇몇 승객들이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여행을 떠나는 듯 보이는 여자애들이 승강장 한편에 모여
요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 시절 소풍을 떠나는 날의 설렘처럼 그들도 잔뜩 들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왔고 14호차 7A석은 열차의 가운데 근처였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무릎이 앞 의자 등받이에 닿는다.
새마을이나 무궁화를 탈 때엔 자리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데 KTX를 타게 되면 어디를 앉아도 자리가 불편하다. 잠시
졸았던가 싶은데 벌써 열차는 광명역을 지나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물품보관함에 짐을 넣어두려고 했었으나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고 말았다. 그래서 혜화역에 도착하여 물품 보관함에 큰 가방을 넣어두고 작은 가방만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번에도 출구를 잘못 나오더니 이번에도 출구를 잘못 찾아 반대편으로 나와 버렸다. 다시 내려가 반대편으로 올라가서 병원으로
갔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약국에 들러 등록번호를 건네주고 약을 받아보니 투명한 주사약이 4개였다. 저걸 오늘 다
맞아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주사실로 갔더니 약을 두 개만 맞으면 된다고 한다. 조혈모세포 촉진제 주사를 사흘 동안 맞아야 하기에
이상하다 싶어서 조혈모세포은행에 전화를 해 보니 하루에 두 개 맞는 게 맞다고 하였다. 내일 두 개를 더 맞고 일요일에는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게 되기에 약국에서 주지 않은 것이었다. 두 방의 주사를 맞고 다른 두 개는 주사실에 맡겨두고 병원을
나왔다.
신천에 사는 OO씨는 포항에서 한 때 같이 근무를 하던 아가씨이다. 컴맹으로 입사한 아가씨를 거의 컴퓨터 도사 수준으로 만들어
퇴사하게 해 주었던 인연으로 아직도 연락하고 있다. 오후에 함께 서울 구경을 하기로 했기에 신천으로 갔더니 갑자기 면접이
잡혔다고 했다. (일주일 전에 퇴사하여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면접에서 합격하여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게 된다고 했다. ) 원룸에서 OO씨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으며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OO씨는 면접 보러 나가고 혼자서
인터넷을 하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6시가 다 되어 돌아왔기에 서울 야경관광을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시티투어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먹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서울시티투어 버스는 서울의 야경을 보여주며 다리를 몇 개 건너서 남산으로 올랐고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을 구경하려고 타워에
올랐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가 도시 전체에 깔려 있어서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노란색 버스를
타고 남산 한옥마을로 내려왔다.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식사를 할 곳을 찾아 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지하철을 찾아 보니 충무로역이 근처에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교대가 그대로 늦게까지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도착하여 식사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듯싶었다. 다시 4호선 타는 곳으로 가서 동대문운동장에서
내렸다. 두타쪽으로 가다 보니 돈가스집이 있어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으나 OO씨는 늦은 식사에 무리하게 움직였기에 속이
좋지 않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밥은 먹고 돌아다녀야겠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OO씨는 2호선을 타고 집으로 갔다. 아마도 도착하면 12시가 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큰 가방을 보관해 두었던 혜화역으로 왔다. 동생네 집에 가서 잘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망설여졌기에
지난번에 서울에 올라와서 하룻밤 묵었던 여관을 찾아갔다. 이번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아담한 방에서 샤워를 하고 편히 쉴
수 있었다. 작은 방에 혼자 있다 보면 큰방이나 여럿이 있을 때 느낄 수 없었던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좋아하는 만화가 나오고 있었지만 피곤했기에 새벽 2시쯤 잠이 들었다.
[두번째 조혈모세포 촉진제 주사]
8
시 30분에 맞추어 둔 휴대전화의 알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다. 일어나 알람 소리를 잠재우고 텔레비전을
켜니 처음 보는 만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림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뉴스채널로 돌려 간밤의 사고 소식을 보면서 퇴실
준비를 하였다. 작은 방에는 전기를 꼽을 수 있는 곳이 6곳이 있었는데 그 모두에 휴대전화와 PDA 2개와 디지털 카메라 전지가
충전 중이었다. (나머지 두 곳에는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꽂혀 있었다. 객실에 비치되어 있던 드라이기는 꼽을 곳이 없어 빼놓았음) 모든 케이블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혜화역 물품 보관소에 큰 가방을 넣은 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엔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오전밖에는 진료가 되지 않기에 더욱 붐빌 수밖에 없는 듯싶었다. 어제 약국에서
주사약을 4개를 탔었기에 오늘은 약국에 들르지 않고 바로 주사실로 향했다. 주사실에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등록번호를
알려 주고 잠시 후 하나의 주사기에 두 개의 약을 모두 넣고 주사를 맞았다. 조금 얼얼한 느낌이 들었지만 크게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사를 놓으면서 몇 가지 증상 (초기 감기 증상과 약간의 어지럼증 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였지만 그런 증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사를 맞고 다시 병원교회에 들러 기도를 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심스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꼭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되니….
지하 1층에 있는 버거킹에서 간단하게 치킨버거로 아침을 해결하고 어린이 병동에 들러 아이들의 그림을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문득 지갑에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근처에 농협을 찾아 봤으나 보이지 않았기에
휴대전화 위치탐색으로 대학로 농협의 위치를 알아내고 찾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들어가 예금을 찾아보니 만원권이
신권으로 나왔다. 아직 신권으로 나온 만 원짜리는 보지 못했기에 왠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서울대병원 쪽으로 걸어오다가
PC방에 들러서 인터넷을 좀 하고 글도 남기고 서울에 온다고 댓글을 달지 못했던 게시판엔 글도 남기고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엔 오랜만에 서울에 온 것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괜찮은 공연을
보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려고 했더니 모두 회원가입을 해야
가능했다. 어차피 공연장 위치도 알아두어야 했기에 공연장에서 바로 예매를 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의 우울한 날씨는 사라지고 약간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거리는 화창한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었다. 골목을 누비며 두레 소극장을
찾아 헤매다 보니 개그를 보라며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솔직히 개그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골목들을
누비다가 민들레 영토까지 왔을 때 두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표를 예매하려고 하였으나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예매를 시작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뿐 매표를 시작하고 있지는 않았다.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큰길까지 나오니 나무 가득 노란 헝겊을 붙여 놓았던 곳 바로 뒤로 커피숍이 보였다.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새로 나온 커피를 맛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KTF로 할인을 받아 새로 나온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데 다행히 안쪽으로 빈 테이블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밀린 후기를 쓰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이후 글은 연극을 본 이후에……. 지금 내려가서 연극표를 구입해야 할 것 같네요. ^^*)
소극장 두레 2관 입구에서 매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빈자리 하나 없이 모두 매진된 상태였기에 가장 앞줄에 임시자리를 만들어
놓은 보조석을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연극은 4시 30분부터 시작이었기에 약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도로변으로 나오니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듯싶은 한 남자가 기타를 매고 사람들 가운데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앞엔 어림잡아도 40명은 넘을
듯싶은 관객이 모여 그의 몸짓과 언어에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잠시 그 옆에 서서 보고 있자니 관객들을 끌고 가는 솜씨가
대단했다. 몇 마디 말에도 관객들은 웃음과 박수로 환호했고 몇몇 관객을 불러내어 공연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방에도 이런 공연이
좀 있으면 좋으련만 문화 , 예술 공연이 너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나오니 영화를 찍는 모습이 보였다. 유명 영화감독이 찍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듯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지나다녔다. 지방에서 이런 영화촬영 장면을 보게 된다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꽤 모였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4시 15분쯤 되어 두레 소극장에 갔더니 이미 먼저 온 관객들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 보조석에 앉아야
했기에 좌석 옆에서 다른 관객들이 모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연극이 시작하기 5분쯤 전에 맨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어야 하기에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몇 해 전에 연극을 본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 연극이었다. 연극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조상 대대로
염쟁이 집안이었던 유씨가 마지막으로 염하는 모습을 취재 나온 기자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처음 시작하였을 땐 약간의
웃음 요소도 있지만 후반부의 반전은 연극 전체를 심오하게 만들었다. 연극 중간에 관객을 불러내어 참여시키기도 했는데 불려나간
관객의 어설픈 연기에 남은 관객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손뼉을 치고 웃을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난 후 염쟁이 유씨와 사진을 찍을
기회를 줬고 그 사진은 싸이 홈피에 올려진다고 했다. (나중에 싸이에 접속하여 사진을 내려받아야겠다.)
공연장에서 올라와 보니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오늘은 사촌 동생네 집에 가기로 했기에 지하철을
타고 사촌동생이 사는 대림역으로 갔다. 지난번에 동생네 집에 갔을 때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였기에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동생네 집에서 귀여운 OO와 놀고,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좀 하다가 새벽 2시쯤 되어 잠이
들었다. (일찍 잘 수도 있었는데 모디아에서 무선 인터넷이 안 되어 원인을 찾다 보니 아주 사소한 실수로 한 가지를 빼먹은 걸
알게 되었고 무선 인터넷 연결이 공함에 따라 여러 팜 사이트들을 서핑하다 보니 잠드는 시간이 많이 늦어지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조혈모세포 촉진제 주사 맞기]
처음 계획은 오전에 일찍 일어나 근처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4시쯤
조혈모세포은행에서 나온 OOO코디네이터를 만나 조혈모세포 촉진제를 주사 맞고 5시쯤 천리안 수화사랑 동호회에서 알게 된 형들과
동생을 만나 남은 오후를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울렸던 휴대전화의 알람은 종료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멈췄고 그대로 잠은 이어져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대충 씻고 동생이 차려 주는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과일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서 서울대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서울에 도착했던 첫날의 우중충한 하늘은 사라지고 맑고 화창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조금 불었지만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니 운이 좋게도 바로 자리가 있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하여 우선 병원교회에
들렀다. 이미 예배는 끝이 났기에 예배당에는 아무도 없어 한산했다. 어쭙잖게 한쪽 귀퉁이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많은 신도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교회를 나와 본관 건물로
왔지만 아직 약속시간까지 2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안내판을 보니 본관 2층에 '다 사랑'이라는
제과점을 겸한 카페가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작동되지 않고 있었기에 뒤편 계단을 이용하여 2층에 올라와 보니 몇몇 사람들이 다
사랑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레모네이드를 하나 시켜서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디아를 꺼냈다. 우선 무선인터넷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았으나 이곳에선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무선랜카드를 빼내고 메모리카드를 꼽아 '골수기증 후기'를 작성했다.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기에 조금 더
이곳에 머물다가 4시에 촉진제를 주사 맞고 수화동 화원들에게 연락하여 약속장소로 이동할 거예요. 이후 후기는 오늘 밤이나 내일
낮에 작성할게요. ^^*)
응급 병동에는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었기에 입구
오른편의 작은 의자에 앉아 팜을 꺼내어 게임을 하고 있었다. 4시가 조금 넘어서 휴대전화가 울리기에 직감적으로 보호자 대기석
쪽을 보니 조혈모세포은행에서 나오신 것으로 보이는 분이 전화기를 들고 계셨다. 통화를 하며 손을 들어 보이니 금방 알아보고
다가오셨다. 게임을 하던 팜을 정리하고 응급실에 접수 후 주사를 맞았다. 같이 입원하게 되는 OOO씨는 주사약의 약효에 의해
두통과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하였지만 나에겐 아직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았다. 간단히 내일의 입원절차와 시간에 관해
얘기를 듣고 헤어졌다.
주
사약의 효과가 나타난 것은 지하철역을 지나 KFC 앞에서 기다리면서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허리에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서 있으려니 허리 쪽이 결리면서 뻐근한 느낌이 들어 조금 힘들었다. 약간의 두통증세도 나타났고 초기
감기 비슷한 증상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5시가 조금 넘어서 천리안 수화사랑 동호회에서 알게 된 수도권 회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결혼한 회원들은 아기를 동반하고 오기도 하였다. 낙지전문점에서 저녁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사를 끝낸 후 자리를
이동하여 민들레 영토 문화관에서 차를 마시며 또다시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결혼한 상태였기에 대화는
아기들의 육아문제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시간이 늦었기에 각자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나는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기에 근처의
PC방으로 향했다. 5층에 있는 PC방의 푹신한 의자에 앉았지만 허리의 통증으로 바로 앉기가 불편했다. 약간은 삐딱하게 앉은
모습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천리안 클럽, 다음 카페, 케퍽, 모디안, 클리앙등의 여러 사이트를 순회하며 글을 읽고 덧글을
달기도 하면서 웹서핑을 마쳤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문득 천리안의 시인 모임 (시창)에서 합평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접속하여 합평에 참여하였지만 두통과 허리 통증으로 깊이 있는 참여를 하지는 못했다. 간단히 안부 글을 남기고 11시 30분쯤
PC방에서 나왔다.
언제나 큰 가방을 넣어 두는 곳은 혜화역 물품 보관함 17번이었다. 서울에 오던 첫날부터 A-17번에 가방을 넣어 두고 여러
볼일을 보다가 찾곤 했었다. 이번에도 A-17번에서 가방을 꺼내어 숙소로 삼을 곳을 찾아 보았다. 좀 전에 인터넷에서 대학로
근처의 영화관을 찾아보니 딱 한곳이 나왔었기에 기왕이면 영화관 근처로 방을 잡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시너스 판타지움을 찾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늘 가던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영화관이 보였다. 영화관 근처에 숙소를 잡고 방에 들어가 보니
지난번에 묵었던 숙소보다 훨씬 큰 방이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잘 되어 있었고…. 간단히 씻고 모디아를 켜서 무선 인터넷이 혹시나
잡힐까 스캔해 보았지만 잡히는 전파는 없었다. 피곤하였기에 다른 작업을 하지 않고 바로 잠이 들었다.
[서울대병원 특실 입원]
아침 일찍 일어나 조조 영화를 보려고 하였으나 지난밤에 알람을 맞춰놓지도 않았는데다 눈을 뜨니 이미 시계바늘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대충 씻고 11시가 넘어서 밖으로 나왔다. 큰 가방을 들고 영화관에 들어가기엔 너무 불편함이 커 혜화역 4번 출구 쪽의
B-17번 물품 보관함에 넣어 두고 다시 올라와 영화관에 들어갔다. 마침 11시 30분에 시작하는 "미스 포터 (영화 초기 광고
때부터 보고 싶어했던 영화였다.)"를 예매 할 수 있었고 지하 3층의 2관에 내려가려고 할 때 휴대전화가 울려 전화를 받아
보니 천리안 시창 정모에서 한번 뵈었던 잠 (OOO:시인)님이었다.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셔서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영화를 보러 내려갔다.
11
시 30분 시작의 영화였기에 10분 정도 미리 내려가 있었는데 25분이 넘어가는 데도 아무도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안내하는
직원도 없었고 다른 관객도 보이지 않았다. 28분쯤 되어서 안내하는 직원이 내려와 표를 확인하고 안으로 입장을 시켰다. 나를
제외한 다른 관객은 전혀 없는 듯싶었다. F7 번은 중간 줄 뒤편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35분쯤 개봉예정인
영화들의 광고를 시작으로 스크린에 영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몇몇 광고 영상이 지나가고 본편이 어느 정도 흘렀을 즈음 왼편 아래쪽
(입구)에서 어둠 속에 가려진 두 명이 중앙계단으로 올라와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영화가 상영
중인데 입장을 시킨다는 게 너무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물론 관객이 혼자뿐이었기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늦게 온 관객을
입장시킨 것이라 생각되지만…. )
영화는 예상대로 재밌었다. 만화를 좋아하고 드라마 요소를 좋아한다면 이런 영화를 보면 딱 좋아하게 될 듯싶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잠님에게 전화를 하니 동대문 쪽이라 하셨다. 서울지리를 잘 모르기에 (지하철로는 한 정거장 거리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한 정거장 거리가 상당히 먼 경우도 많았기에…. ) 내가 찾아가기엔 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잠님께서 택시를 타고 혜화역으로
오셨고 점심을 먹으려고 대학로 뒤편의 연극 공연장 부근을 돌아다녔다. 마침 베트남 칼국수집이 눈에 들어왔고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기에 시식을 해 보기로 했다.
베트남 칼국수는 추천할 만큼 맛있는 요리는 아니었다. 콩나물을 국수 물에 말아서 건져 먹게 되어 있었는데 콩나물을 삶거나 데친
것이 아닌 생 콩나물이라 약간은 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무지와 소스를 바른 다른 반찬 (김치를 달라고 하니 없다며 대신 가져
온 절임 반찬)을 먹으며 칼국수를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동대문 쪽을 구경시켜 주신다고 하여 마을버스를 타고 종로 4가 근처에서
내렸다. 청계천으로 내려가 흐르는 개천 옆을 걷기도 하고 광장시장에 들러 빈대떡을 먹기도 했다. 막걸리와 순대를 파는 어떤
할머니의 노점에서 서울 막걸리를 한잔 마시기도 하면서 시장 구경을 하였다.
종로구민회관 옆을 지나 동대문운동장 근처를 구경할 즈음 OO님에게 연락이 왔고 다시 구민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OO님을 만나
따뜻한 레몬홍차를 얻어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지난밤에 합평에서 OO님과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합평
위주로 대화가 진행되었기에 합평외의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었다. 몇몇 추천 볼거리를 듣고 동대문 운동장 안에 만들어진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인사동 쪽엔 볼거리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먹을거리 문화로 바뀌었다고 하여 가지 않기로
했다.)동대문 운동장 관중석 안쪽으로 기다란 천막이 처져있고 그 아래로 도깨비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 물건들이 그곳에서 거래되어 있었다. 없는 것 없이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는 시장이 얇은 천막 아래 가득
펼쳐져 있었다. 양옆으로 신기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걷다 보니 사고 싶은 물품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안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에 자꾸만 손이 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시장을 벗어나 운동장 뒤편으로 가니 자그마한 공터가 나왔다. 서울에서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걷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이곳에서 짧은 길이지만 흙이 주는 부드러움을 느끼며 걸을 수 있었다.
다시 혜화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어릴 적부터 걷기를 좋아했기에 몇 블록 정도 되는 거리는 걸어다녀도
별로 힘들지 않지만 잠님께서 힘들어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한참을 걸으며 휴대전화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목적지까지 약 500미터 정도 거리였다. 허리 통증이 자꾸만 심해졌지만 걸으며 다른
생각을 해서 잊으려고 노력했다. 혜화역에 도착할 무렵 담당 코디네이터로부터 연락이 왔고 4번 출구 쪽까지 가서 가방을 챙겨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들어갔다. 늦게 올 거라던 OOO씨도 일찍 도착하여 OOO 코디네이터와 함께 있었다. 간단히 잠님을 소개해 드리고
2층 헌혈실에서 혈압과 체온, 그리고 수술할 때 바늘을 꽂을 장소를 표시한 후 입원실로 올라왔다. 입원실은 12층 특실이었다. 121
병동 12107호실이 내가 머무는 곳이었다. 함께 올라온 OOO씨는 반대쪽 복도에 있는 122병동 12204호라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OOO씨는 대단해 보였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리고 게다가 여자분이 어떻게 이런 큰 수술을 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어 보니 주위에서 반대도 심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신이 수술을 결심하고 이렇듯 입원까지 하게 되었으니….
웬만한 남자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 올라와 간단히 키와 몸무게, 혈압등을 다시 측정하고 환자등록카드도 작성을
하였다. 수술에 관한 서류에 사인도 하고…. 이젠 정말 수술을 하는구나싶다.
담당 코디네이터가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어서 불편함이 없었음에도 간식으로 먹으라며 각종 음료와 과일, 과자류를 한가득 사서
냉장고에 채워 주었다. 마치 호텔방 같은 병실에서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먹을 것까지 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었다.
화장실에는 처음 사용해 보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까지 되어 있어 여름철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주 씻을 수
있어 좋을 듯싶었다. 혈액검사를 위해 약간의 피를 빼었고 촉진제 주사를 또다시 맞았다. 몇 번에 걸쳐서 간호사들과 의사 (인턴
정도 되는 듯)가 다녀갔고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며 응원해 주셨다.
휴게실에서 간단히 인터넷을 하며 등록된 글들을 읽다가 다시 병실로 돌아와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화교육비디오를 보았다. 꾸준히 연습을
해야 수화실력이 녹슬지 않을 텐데 자꾸만 쉬게 되어 기초반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못할 지경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샤워를 하고 나와 다시 여행지에 관한 비디오를 보았다. 시간에 여유가 많다면 수많은 여행지를 다 다녀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으니 이와 같은 여행지 비디오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으로 출력이 조정된 휴대전화의 영상은
수많은 섬을 비춰주고 있었다. 잔잔히 펼쳐지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한줄기 시구가 흘러나올 듯도 싶은데 나올 듯 말 듯하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덧 밤은 깊어 새벽 2시를 향하고 있다. 수술은 10부터로 알고 있었지만 일어나야 하는 시간은 7시였다. 커다란 바늘을 꽂을
양쪽 팔에 마취성분을 지닌 연고를 두껍게 미리 발라 놓아야 주사를 꼽았을 때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 느낄 수 있다. 연고를 바르고
8시쯤 아침 식사를 하게 되고 9시엔 수술실로 내려가 수술을 준비하게 된다. 수술은 오후 2시가 넘어서 끝날 것이기에 점심은
수술실에서 먹게 된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수술한다고 힘들 텐데 주사 바늘 꼽아 놓고 밥을 먹게 된다고 하니 왠지 미안해진다.
근데 양쪽 팔에 주사 바늘을 꼽을 텐데 어떻게 식사를 하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담당 코디네이터가 떠먹여 주는 걸일까?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얼른 자야겠다. 수술을 위해 일찍 자야 하는데 너무 늦게 자는 것 같기는 하지만….
^^*
[1차 골수 이식 수술]
오전 6시 40분. 새벽에 늦게 잠들었기에 잠에서 깨어나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수술 첫날의 설렘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7시가 조금 넘으니 간호사가 와서 오전 9시에 헌혈실로 내려간다고 하였다. 8시가 조금 안 되어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늘을 꽂을
양쪽 팔에 전날 받아 두었던 연고를 두껍게 발랐다. 피부를 마취시켜 바늘을 찔러도 아프지 않게 하는 연고라고 하였다. 8시
30분쯤 되어 헌혈실로 내려갔고 잠시 후, 같이 입원하였던 OOO씨도 양손 가득 휴대전화와 책, 카메라 등을 가지고 내려왔다.
골수이식을 위한 수술 시간이 보통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지루함을 덜어 줄 책을 가져 온 것이었다. 빈손으로 내려왔었기에
다시 병실로 올라가 모디아와 휴대전화, 카메라를 챙겨 내려왔다.
골수기증을 위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점심도 병실에서 먹는 것이 아닌 헌혈실에서 먹게 되어 있었다. 빨리 끝난다면 1시
30분에서 2시쯤 병실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였다. 양팔에 주사 바늘을 꼽고 윙윙거리는 기계에 가느다란 호스로 연결된 채
침대에 누웠다. 왼팔에서 빠져나간 혈액은 골수를 뽑아 내는 기계를 지나 다시 오른팔로 들어왔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모디아로
전자책을 보기도 하고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루하여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기도 했고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쪽 팔만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책을 보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뒤편 침대에서 골수기증을 위해 채혈을 하던 OOO씨는 혈액이 잘 나오지 않아 고생했다고 하였지만 내 경우에는 아주 잘 나와서
예상시간보다 훨씬 빠른 2시간 정도만의 필요한 만큼의 골수를 뽑아 낼 수 있었다. 점심을 헌혈실에서 먹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병실에 올라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휴게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니 포항에서 알고 지내던 OOO이 면회를 왔고
병실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OOO은 얼마 전 출산 때문에 움직이기 불편한 상태였지만 오랜만에 만날 기회였기에 병실로
찾아 와 주었다. 오후에 몇 차례에 걸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 그리고 조금 직급이 있어 보이는 몇몇 분들이 왔다 갔고 내일도
2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여 조혈모 촉진 주사를 맞았다.
저녁 식사 후 다시 휴게실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병실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봤다. 역시 텔레비전에서 볼 만한 프로는 만화뿐인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으니…. 수시로 병실에 들어와 몸무게를 재기도 하고 혈압과 체온을 재기도 하여 조금 귀찮기도
하였지만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이 밝은 모습으로 대해 주었고 골수이식을 결심한 것이 대단히 큰일이라도 되는 듯 성원해 주어서
고마웠다. 최근 들어 운동은 하지 않고 먹기만 하여 배가 많이 나왔기에 이번 골수이식이 끝나면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을 취한 후 내일을 위해 잠이 들었다.
[2차 골수 이식 수술]
서울대병원 입원 2일차 아침이 밝았다. 7시가 조금 넘어서 휴지통을 비우러 청소 아주머니께서 들어오시고 곧이어 간호사가 저울을
들고서 몸무게를 재러 들어왔다. 혈압을 측정하러 오기도 했고 체온을 재기도 했다. 8시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어제처럼 주사
바늘이 꼽히는 부분에 약을 발랐다. 오른팔에는 어제 골수채취 후 바늘을 뽑지 않았기에 주사 바늘과 가느다란 호스가 팔에 감겨
있어 따로 약을 바를 필요가 없었다. 왼팔의 팔꿈치 안쪽에 조금 바르고 나니 약이 많이 남았다. 연고가 옷 소매에 닦이지 않도록
투명한 접착 비닐로 바늘이 꼽힐 부분을 감싸고 텔레비전을 보며 쉬고 있었다.
9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헌혈실에 내려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제처럼 작은 기계를 들고서 남자직원 분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기다렸다. 잠시 후 휴대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담당 코디네이터와 함께 골수기증을 하는 OOO씨가 이미 헌혈실에
내려가 있다고 하여 밖으로 나오니 간호사실 앞에 어제와는 다른 남자직원분이 작은 기계를 들고 서 계셨다. 함께 2층 헌혈실로
내려가니 OOO씨의 어머니께서 와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골수 채취를 시작했다. 왼팔에만 바늘을 꽂으면
되었고 바늘을 꽂을 때의 통증도 거의 없었다. 바로 옆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어제처럼 모디아를 이용하여 책도 보고
게임도 하다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도 보았다.
역시나 너무나 잘 나와주는 혈액 덕분에 11시 20분쯤 골수채취가 끝이 났고 점심은 병실에서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
가서 인터넷을 잠시 이용하고 왔더니 골수이식의 환자 보호자께서 코디네이터를 통해 편지를 남겨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전자가
일치하여 골수이식을 받게 된 환자가 어린 아기거나 꼬마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여학생이라고 하였다.
편지는 자필이 아닌 컴퓨터로 인쇄된 것이었지만 그 내용이 너무 슬펐기에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골수기증
자체가 상호 비공개로 진행이 되기에 환자의 가족에 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첫째 딸이 희귀병에 걸린 지 1년만에 둘째 딸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다. 한 가족에게 이렇게나 큰 시련이 두 번씩이나 닥칠 수 있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내 몸에서 뽑아 낸 골수의 상태가 좋아서 골수이식 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희망을 품어도 좋을 듯싶었다.
2시쯤 되어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 데 광주에 사는 동생이었다. 지난번 전화 통화에서 골수이식에 관한 내용을 듣고 매우
놀라면서 걱정을 했었는데 회사에 조퇴를 하고 서울로 오려고 비행기까지 예약을 한 상태라고 했다. 2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기에 반가운 방문을 받았다. 핑계였는지 아니면 이유를 달기 위해서였는지 저녁에 뮤지컬 공연을
보려고 올라왔다고 했다. (표를 미리 구한 것이 아니라 급하게 구해서 올라온 것을 보면 이유를 만들기 위한 것일지도…. )
걱정하는 동생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6시가 조금 넘어서 공연을 보러 간다 하기에 로비까지
배웅해 주었다. 다음엔 광주에 찾아갈 테니 그때 보자는 약속을 남기고….
7
시가 조금 넘어서 다시 천리안 수화사랑 동호회에서 만나 알게 된 동갑 여자친구를 만났다. 근무를 마치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나를 보려고 달려와 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13층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병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1층
로비에서 커피를 마신 후 돌아갔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게 되면 언제나 옛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것이 때론 정겹기도 하고
새삼스러운 것도 있는데 어떤 것을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두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잠시 과거 속에 머물다가 현실로
돌아오니 차가운 바람이 얇은 옷깃을 스친다.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 편하게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 모두 너무나 잘 대해주어서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느껴졌었다.
내일은 오전 중으로 퇴원을 하게 된다. 이제 퇴원하고 나면 그동안 함께했던 조혈모세포은행 협회의 여러 코디네이터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곳 서울대병원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도 기억에서 잊혀 갈 것이다. 다시 인연이 된다면 보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기에…. 언제나 인연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만나면 헤어지게 되고 헤어지면 또 만나게 되는…. 영원한
이별도 없고 영원한 만남도 없는…. 다만 바라는 것은 이번에 골수이식을 통해 건강해질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여자아이와 또다시
골수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조혈모세포은행에서 골수기증으로 연락이 온다면 이번의 어린이가 백혈병이
재발하여 다시 골수가 필요해 진 것일 테니 연락이 오지 않아야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
중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고 한다. 그러니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이번 수술을
받은 어린이 외에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백혈병에 걸려서 내게
연락이 온다면 그건 정말 로또 당첨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시간이 많이 늦어 버렸다. 괜히 생각이 많은 밤이다.
그만 자야겠다.
[퇴원 그리고 우면산 등산]
오
전 6시 40분쯤 되었을 듯싶었다. 부지런한 청소부 아줌마께서 병실에 들어와 휴지통을 비우셨고 곧이어 커다란 대걸레를 가지고
오신 분이 바닥을 청소하셨다. 주변의 부산스러움에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7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입원 후 계속 그래 왔듯이
간호사가 몸무게를 재려고 저울을 들고 왔고 입원 3일만에 2킬로 가까이 늘어난 몸무게에 놀란 소리를 했다. 8시쯤 아침 식사가
나왔다. 오늘이 퇴원임에도 식판에 붙은 종이엔 "중식은 헌혈실로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어쩌면 어제의 식판 종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인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퇴원을 위해 포항에서 가져 온 짐을 정리하였다. 조혈모세포은행에서 나온 수건과 여행용품세트를 챙겨 넣으니 안 그래도
빵빵한 노트북 가방이 터질듯하였다. 환자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처음 입원을 할 때도 아픈 곳이 없었으니 환자복을 입는
것 자체가 조금은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9시가 넘어서 간호사가 들어와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였고 잠시 후 담당 의사선생님이 오셔서
수고했다는 말씀과 함께 오늘 퇴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조혈모세포은행에서 나온 코디네이터는 10시가 다 되어서 오셨다. 지금까지
만나본 코디네이터와는 달리 차장이라는 직급을 가진 아주머니였다. 혹시나 모를 후유증과 주의사항 등을 듣고 퇴원 수속이 되는 즉시
퇴원을 하기로 했다.
함께 골수이식을 위해 입원하였던 OOO씨는 어머니와 남동생, 남동생 여자친구가 와서 퇴원을 도와주고 있었다. 현관을 빠져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였다. 짧지만 함께 했던 이들과 작별을 고하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천리안 문단에서 만났던
잠(OOO)님께서 예술의 전당을 구경시켜 주신다고 하여 남부 터미널로 이동하여 만나뵈었다. 예술의 전당 뒤편엔 우면산이 있는데
소 얼굴 형상이라 우면산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약수를 마시니 차가운 물에 갈증도 해소되고
산의 기운을 마시는 듯하였다.
예술의 전당 뒤편으로 내려와 국악 박물관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들이 입구부터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1층의 한편에는
외국의 전통악기도 조금 소개되어 있어 전통 악기의 형태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보니 징과 꽹과리, 북, 장구
등이 놓여 있었고 한쪽엔 투호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투호를 조금 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기에 징과 꽹과리 등을
들고 울리며 사진을 찍었다. 입구 쪽으로 걸어 나오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건물이 각기의 활용에 따라 모여 있고 조형물들도
각각의 위치에서 조화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기를 하였지만 산행을 해서인지 조금 배가 고팠기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 두부요리를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하여 가 보니 두부요리는 별관에서 먹을 수 있다는 안내 글이 붙어 있어 별관을
찾아 뒤로 돌아서니 별관이 3동이나 되었다.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지 별관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매일 이렇게 손님이 많다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 싶었다. 옥수수로 만들었다는 동동주를 마시며 두부요리를
먹었다. 메인으로 나온 두부요리는 딱히 맛이 특출하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옥수수로 만든 동동주는 색다른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표를 미리 구하려고 서울역으로 이동하였다. 미리 예매를 해 둔 상태였기에 몇 겹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뒤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은 없었다.
무인 발권기에서 결제 완료된 승차권을 받아들고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인터넷으로 보았을 때엔 남대문 시장의 수입 전자제품이
재미난 것이 많다고 하였는데 막상 가 보니 카메라 위주로 되어 있고 그나마도 점포가 많지 않았다. 지하엔 옷가게와 전화기를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와 혜화역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잠님은 충무로에서 내려 집으로 가셨고 난 혜화역에서
내려 PC방에서 대학로 공연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낮 공연은 없고 가장 빨리 시작하는 것도 7시 30분이나
되어야 했다. 공연을 보고 나면 동생집에 들어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을 듯싶어 근처 영화관에서 바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 결국, 영화 보는 것도 포기하고 사촌동생네 집으로 이동하였다.
뚝
섬 쪽에서 8시에 모임이 있었지만 대림역에서 가기엔 너무 멀었다. 게다가 난 지리도 모르기에 처음 가는 곳에서 방황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핑계로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일찍 잠이 들었다. 사촌동생의 신랑이 일찍 들어온다면
간단히 술이나 한잔하겠지만 회식이라 늦게 온다고 하여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 무렵 밖에서 동생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그대로 있다가 잠에 빠졌다. 어딘지 모를 하얀 공간에 작은 원탁 주위로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은 나였고 다른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이 나를 몰아세웠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야단을 치고 있었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귓가에서 시끄럽게 울어 대던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고 나를 몰아세우던 그들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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