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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감동적인이야기

유한양행 유일한 회장 - 빈손으로 떠난 기업가

우리나라에 아니 전 세계에 이런 분이 다시 나올까 싶네요~ 유한양행 대성해야할 기업인 것 같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잘 나가고 있는 회사인지 궁금하네요? 아래는 나무위키에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유한양행(柳韓洋行)은 대한민국 제약업계 매출 1위(2016년도 기준)의 중견기업으로, 본사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대방동)에 위치해 있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의 이름을 따 온 '유한'과 세계로 통한다는 뜻의 '양행'을 합친 말이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을 팔았으나, 이내 국내에서 자체 제조한 제품도 팔기 시작했다. 주요 제품으로는 트윈스타정(혈압강하제), 트라젠타정(혈당강하제), 비리어드정(B형간염 치료제) 등이 있다.
유한양행의 심벌마크이자 상표인 '버들표'는 유일한 박사가 미국에 있다가 유한양행을 세우기 위해 귀국하려고 했을 적에 서재필이 유일한 박사의 성(버들 柳)에서 착안해 제작하여 유일한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버들표'는 실존하는 버드나무를 본따 만든 로고로 1926년 창립 당시 처음 사용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다. 1920년에 설립된 동아일보의 東을 본딴 로고와 함께 지금까지도 장수 중인 오래된 로고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유한양행 이름보다 유한킴벌리나 한국얀센 이란 이름이 더 친숙할 것이다. 여담으로 유한킴벌리가 곽화장지인 "크리넥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때가 1971년이다. 대한민국의 제약 기업 중 7243만원으로 평균 연봉 2위를 찍은 기업이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15년 연속 선정되었다. 
1936년에는 대한민국 기업 최초로 전사원 주주제를 실시, 유일한 창업주가 가지고 있던 주식의 52%를 당시 유한양행 회사원들한테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전문 경영인(CEO) 제도를 실시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는 유일한 박사가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계승함으로서 직접 시행했다. 다시 말해, 재벌 세습을 안 했다. 또한 전문 경영인도 외부 인사의 영입이 아니라 내부 인사의 승진을 원칙으로 한다. 전임 대표였던 김윤섭 대표이사(재임기간: 2009년~2015년)도 1976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현임인 이정희 대표도 1978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딸에게 묘소 주변 땅 5천평, 손녀에게 학자금 1만 달러를 물려준 것을 제외하고는 전 재산을 기부했다. 그나마 그 묘소 주변 땅도 공원으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이용하라고 물려준 것이며 학자금 1만 달러 또한 손녀는 처음에 받지 않으려고 하다 반만 받고 나머지는 전부 기부하였다. 그야말로 호부호녀. 유일한 박사의 타계 후 40여 년이 흐른 대한민국 재계는 온통 2세 3세 경영인이 판치고 있는 데다가 결국 곪고 곪은 상처가 크게 터지고 말았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전문경영인 제도도 모자라서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최대 6년)이 가능하다'는 정관까지 끼어있어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하지 못하게 했다. 전임인 김윤섭 대표가 제약계 최초로 1조 원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주총을 통해 물러난 이유도 이 때문.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땅콩 리턴과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면서, 가족 경영을 거부한 기업인의 표본으로 유한양행 사측에 창업주 일가의 연락처를 문의했더니 그 분들 연락처는커녕 지금 뭐 하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유일한 박사 본인이 임종 직전 회사에 남아 있던 일가 친척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몽땅 해고했기 때문에. 셀프 숙청. 유한양행에는 단 1명도 일가 친척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유한양행 창업주의 혈육은 유한양행 및 관련 계열사에 입사가 금지되어 있으며 유한양행과 선을 그으려 하고 있다. 유일한 박사의 추모 행사나 혹은 유한재단에서 여는 시상식에 아주 가끔 참석하는 정도라고 한다.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는 정경유착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는 법인세를 철저히 납부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대한 보복인지 국세청으로부터 수개월 간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세무 조사원이 "아무리 털어도 먼지 안 나는 경우가 있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탈세 내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제조하고 있는 약품들도 관련 기관에다가 검사를 의뢰해 보니 멀쩡했다는 것. 심지어 약품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분까지 고려하여 원재료를 손실되는 양만큼 더 투입하여 약품 성분의 함량을 정확히 맞추었다고 한다. 결국 보고를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다면 오히려 훈장을 받아야 마땅하다'며 1968년 유한양행에 동탑 산업 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