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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개석 총통의 집무실

중국 난징의 박물관에서 본 "장개석 총통"의 집무실 전경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1940년대라고 하더라도, 집무실이 조금 초라해 보여서 예외였답니다!! 



집무실 내부 전경입니다~ 난징 프레지덴셜 박물관에 있답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 있는 장개석에 대한 소개입니다. 

장제스(장개석, 중국어: 蔣介石, 병음: Jiǎng Jièshí, 광둥어: Chiang Kai Shek 창카이섹, 영어: Chiang Kai-shek, 1887년 10월 31일 ~ 1975년 4월 5일) 또는 장중정(중국어: 蔣中正, 병음: Jiǎng Zhōngzhèng)은 중국의 군인, 정치·군사 지도자로 중화민국의 총통이다. 흔히 불리는 장제스의 "제스"(介石)는 바로 그의 자이며 "중정"(中正)은 그의 본명이다. 아명은 서원(瑞元)(루이위안), 족보명은 주태(周泰)(저우타이), 학명은 지청(志淸)(치칭)으로 종교는 감리교이며, 황푸군관학교 교장, 국민혁명군사령관,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 중화민국 행정원장, 국민정부군사위원회위원장, 중국 국민당 총재, 삼민주의 청년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장 성 펑화현 출신으로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유학갔다. 일본 유학시기에 중국동맹회에 가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다. 쑨원의 신임을 받아 1923년 제1차 국공합작때는 소련으로 군사시찰을 갔으며, 귀국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북벌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상하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축출하고 1928년에 베이징을 점령하여 북벌 완수를 선언했다.


이후 난징에 수도를 정하고 국민정부를 선포, 국민정부 주석과 육군, 해군, 공군 총사령이 되어 정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0년부터 공산당 토벌에 나섰으며, 이를 항일전쟁보다 우선시하였다. 그러나 1936년 공산당 토벌작전을 독려하기위해 시안에 갔다가 그의 부하인 장쉐량과 그의 군대에 의해 감금당한 시안 사건을 계기로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을 결성하여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쟁(중일전쟁)에 나섰다. 1945년 중일전쟁 끝난 이후 1946년부터 다시 공산당과 내전을 벌였으며, 1949년 공산군에 밀려 중국대륙의 본토를 포기하고 타이완으로 이전하였다. 중화민국의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 타이완을 지배, 장기독재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


1948년 5월 20일부터 1949년 1월 21일까지는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과 중국 대륙의 국가원수를 지냈고 1950년 3월 1일부터 1975년 4월 5일까지 초대~5대(리쭝런의 직무대행기간 및 사망으로 인한 옌자간의 직무승계기간 제외) 중화민국 총통을 역임했다.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내에서는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國父)로 불린다.